교육활동

두 학교, 두 연도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두 번 학교 일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28년 사립 동창학교, 1935년 창수공립보통학교. 두 학교는 별개이며, 후대 편찬물이 적은 연대는 동시대 신문과 어긋납니다.

동시대 신문이 그리는 연표

동시대 신문 네 지면이 확정하는 교육활동 연표
시점 지면 확정되는 것 등급
1928-04-05 조선일보 1928-04-27 4면 동창학교 개학. 이현설은 발기인 네 사람 가운데 하나이자 교감 겸 재무 확정
1930-03-25 조선일보 1930-03-28 3면 동창학원 졸업·수료식. 적어도 이날까지 운영 확정
~1931-09-07 조선일보 1931-09-07 4면 폐쇄된 사립학원으로 열거. 정확한 폐쇄일은 미확정 확정
1935-05-08 조선일보 1935-05-08 6면 창수공립보통학교 설립위원회 위원. 기본금 3,700원 완납 확정

1928년 4월 5일 — 동창학교

조선일보 1928년 4월 27일자 4면 「盈德蒼水面 東昌學校設立」은 학교가 세워진 경위를 처음부터 적습니다. 창수면의 교육 형편을 개탄하던 동면 유지 金潤德 · 金舜兆 · 林學烈 · 李鉉卨 네 사람의 발기로 수년 전부터 私立學校設立期成會가 조직되어 활동했고, 그 결과 1927년 가을 9월경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11월경 준공했습니다.

운동장을 포함해 부지 약 500평, 교사 10여 칸, 비용은 약 1,500원. 기본금 적립은 없이 인근 각 마을이 해마다 곡물을 모으고 발기인과 유지들이 의연을 내어 경비를 충당한다고 했습니다. 1928년 4월 5일 개학, 학생은 약 50명. 5월 초순에 낙성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기사 말미의 직원 명단은 교장 金潤德, 학감 金舜兆, 교감 겸 재무 林學烈 · 李鉉卨, 교사 朴始發 외 1인입니다. 한 지면 안에 이현설의 이름이 발기인과 교감 겸 재무, 두 번 있습니다. 확정 → CLM-006

1919년의 4년형과 1928년의 학교 사이에는 약 9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관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출옥일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930년 3월 25일 — 졸업·수료식

조선일보 1930년 3월 28일자 3면의 묶음 기사 「各學校卒業」에 蒼水東昌學院 同二十五日이라는 한 줄이 있습니다. 인가받지 못한 사립학원이 2년 가까이 버티며 학생을 배출했다는 뜻입니다. 확정 → CLM-021

다만 이 기사에는 참석자 명단이 없고 이현설의 참석 여부도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행사가 열렸다는 것과 특정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다른 사실이며, 이 사이트는 그 차이를 문장 안에서 흐리지 않습니다.

늦어도 1931년 9월 7일 — 폐쇄

조선일보 1931년 9월 7일자 4면 「五個所公普校에 私立學校가六個 / 盈德敎育狀况一瞥」은 인가 문제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사립학원을 열거하면서 창수의 동창학원을 적었습니다. 1930년 3월 25일의 졸업식과 나란히 놓으면 폐쇄 시점은 그 사이로 좁혀집니다. 구간은 확정되고 정확한 날짜는 비어 있습니다. 확정 → CLM-008

지면에 인쇄된 글자는 蒼水朿昌學院입니다. 이 사이트는 朿을 東의 지면 표기 이체 또는 판독 오류로 판단합니다. 소재 표기가 같고, 같은 신문이 1928년과 1930년에 같은 곳의 학교를 東昌 으로 적었으며, 두 글자는 자획이 가까워 흔히 섞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를 적어 두는 이유는 글자 하나 때문에 판단을 되돌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금 적립 없이 인근 마을의 곡물 저축으로 유지되던 재정 구조를 함께 놓으면 재정난이라는 사유가 낯설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연결은 아직 자료로 확인한 것이 아닙니다.

1935년 5월 8일 — 창수공립보통학교 설립위원

조선일보 1935년 5월 8일자 6면 「普校基金完納」은 영덕군 안에서 창수면만 보통학교가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설립위원회의 활동으로 기본금 3,700원을 한 달이 안 되어 완납했다고 전합니다. 흉년으로 초근목피 생활을 하던 면민의 형편에도 불구하고 이룬 결과라고 적혀 있습니다. 확정 → CLM-007

위원 명단은 회장 李洛鉉, 부회장 李謙浩, 위원 李尙□ · 南□鎭 · 李鉉卨 · 權泰鎬 입니다. □는 지면 훼손으로 판독되지 않은 글자이며, 이 사이트는 추정해 채우지 않고 훼손 상태 그대로 둡니다.

후대 편찬물과 연대가 어긋납니다

기록충돌 항목 →

『창수면지』 484쪽과 영덕군청 누리집의 『영덕군지』 교육 장은 같은 이름의 학원을 1935년 설립·1938년 폐쇄로 적습니다. 동시대 신문이 전하는 1928년 개학, 1930년 운영, 늦어도 1931년 폐쇄와 일곱 해가 어긋납니다.

동시대 신문과 후대 편찬물의 연대 비교
자료 등급 설립·개학 폐쇄·폐지
조선일보 1928-04-27 확정 1928-04-05 개학 —
조선일보 1930-03-28 확정 — 1930-03-25 운영 중
조선일보 1931-09-07 확정 — 1931-09-07 이전 폐쇄
『창수면지』 484쪽 공식 후대기록 1935년 1938년
영덕군지 웹 게재본 공식 후대기록 1935년 1938년

이 사이트는 동시대 지면을 연표로 삼고, 후대 서술은 후대 서술로 표시해 남깁니다. 어느 한쪽을 지우지 않는 이유는, 군지를 읽고 온 사람이 그 문장을 여기서 찾지 못하면 정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어긋났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가설만 적어 둡니다. 두 학교와 두 연도가 겹쳐 읽혔을 가능성, 폐쇄 뒤 재개원이 있었을 가능성, 어느 한쪽 연도가 부정확할 가능성. 전부 가설이며 인가·폐쇄 행정문서로 확인해야 합니다. 확정 → CLM-027

두 편찬물의 동창학원 대목 어디에도 이현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는 편찬물을 근거로 그의 관여를 서술하지 않으며, 1928년 관여를 확정하는 것은 동시대 신문 한 장입니다.

유족이 전하는 기억

CLM-029 →

유족에게는 이현설이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면협의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이 사이트는 이 문장을 셋으로 쪼개 각각 다른 등급을 붙입니다.

유족 구술의 부분별 검증 상태
구술의 부분등급근거
학교 건립에 관여했다 확정 CLM-006 · CLM-007
면협의원이 되었다 확정 CLM-026
학교를 세우려고 면협의원이 되었다 가족 제공정보 직접 사료 미확인

앞의 두 가지는 동시대 신문이 확정합니다. 기억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그 둘을 잇는 인과이며, 뒷받침하는 문서도 반증하는 문서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를 조심합니다. 구술은 학교와 면협의원을 한 문장에 묶지만 그가 관여한 학교는 두 곳이고 연도도 둘입니다. 전승 과정에서 둘이 겹쳐졌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은 가능성이지 확인된 설명이 아닙니다. 이 사이트는 1935년에 동창학원을 세웠다고 적지 않습니다.

초가지붕을 얹은 시골 예배당 앞에 흰 옷을 입은 마을 사람 수십 명이 줄지어 서 있는, 손으로 색을 입힌 환등 슬라이드 사진.

시대 배경사진 · 이현설 선생 아님

이현설 선생 또는 가족과 직접 관련 없는 시대 배경사진. 1900~1920년대 한국 농촌 마을의 초가 예배당과 주민들을 담은 채색 환등 슬라이드. 촬영 장소는 창수면이 아니다.

출처: USC Korean Digital Archive kda-m57, item 688, Public Domain · 원출처 보기
원본 SHA-256 56bdce4310a2b9c9e3e8a67c7ed260568b04fcafc04bef51b7634979115efc77

출처

자료
1908~1922년경 한국 농촌의 초가 예배당 (USC 한국 디지털 아카이브)
생산자 촬영자 미상 · Taylor 컬렉션 생산일 1915년 — USC 한국 디지털 아카이브는 촬영 시기를 1908~1922년 사이로 본다. 정확한 연도는 미상이다. 소장처 USC Korean Digital Archive 식별번호 kda-m57 · item 688 원문 링크 http://digitallibrary.usc.edu/cdm/ref/collection/p15799coll48/id/688
이용조건
웹 게시 게시 가능 — 퍼블릭 도메인 자료다. 크레딧과 원출처 링크를 화면에 함께 표시하며, 고정 캡션 없이는 표시하지 않는다. 이용조건 Public Domain 개인정보 화면 속 인물은 누구도 특정되지 않았다.

자료 레코드 DOC-021 상세 보기 · 검증등급 확정 · 최종 검토 2026-08-19

동창학교가 어떤 규모의 마을에 세워졌는지 짐작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창수면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며, 화면 속 사람들은 이현설 선생이나 동창학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창수면 동창학교의 실제 사진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학교 사진이라는 경로

학교는 단체사진을 남깁니다. 낙성식, 졸업식, 개교식, 교직원 사진. 만약 동창학교나 창수공립보통학교의 단체사진이 남아 있고 그 안에 이름을 적은 명단이 함께 있다면, 그것은 이현설의 얼굴에 닿는 유력한 경로가 됩니다.

2026년 8월 21일 현재 공개 범위에서 확인한 결과는 모두 미발견입니다. 영덕군 사진DB 공개 검색에서 이현설·동창학원·김윤덕은 직접 일치가 나오지 않았고, 창수초등학교 공식 앨범 게시판의 목록 35쪽·게시물 310건 범위에서 1935~1952년 옛 사진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공개 검색면과 공개 게시판에서 확인한 범위이며, 기관이 그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명단 없는 단체사진에서 얼굴만 보고 누군가를 지목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의 검증방법에서 그런 사진은 D등급, 즉 비교용 후보에 머뭅니다. 관련 네 기사 지면 자체에는 인물사진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 진행 상황은 사진 추적 조사에 있습니다.

관련 주장

근거 자료

자료 목록 →
  • DOC-006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28년 4월 27일자 4면 — 「盈德蒼水面 東昌學校設立 / 校舍도建築」

    영덕군 창수면에 동창학교가 세워진 경위를 전한 동시대 보도. 김윤덕·김순조·임학렬·이현설 네 사람의 발기로 수년 전 사립학교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9월경 착공해 11월경 준공했으며, 1928년 4월 5일 개학해 학생이 약 50명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직원 명단에 교장 김윤덕, 학감 김순조, 교감 겸 재무 임학렬·이현설, 교사 박시발 외 1인이 실려 있다. 이현설의 출옥 이후 활동을 확정하는 첫 동시대 기록이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28년 4월 27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28-04-27 4면 · 기사 ID 274719280427e1047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74719280427e1047&set_date=19280427&page_no=4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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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13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30년 3월 28일자 3면 — 「各學校卒業」 중 蒼水東昌學院 항목

    여러 학교의 졸업·수료 소식을 한데 묶어 실은 기사. 그 가운데 <span class="mono">蒼水東昌學院 同二十五日</span> 항목이 있어, 1930년 3월 25일에 창수 동창학원의 졸업·수료 행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1928년에 개학한 학원이 적어도 이 날짜까지 학생을 배출할 만큼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확정한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30년 3월 28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30-03-28 3면 · 기사 ID 1930032800239203007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30032800239203007&set_date=19300328&page_no=3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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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14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31년 9월 7일자 4면 — 「五個所公普校에 私立學校가六個 / 盈德敎育狀况一瞥」

    영덕군의 교육 형편을 훑은 기사. 인가 문제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사립학원을 열거하면서 <span class="mono">蒼水朿昌學院</span>을 함께 적었다. 지면의 <span class="mono">朿昌</span>은 <span class="mono">東昌</span>의 지면 표기 이체 또는 판독 오류로 판단한다. 1930년 3월 25일 행사 이후 늦어도 1931년 9월 7일 이전에 학원이 폐쇄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정확한 폐쇄일은 이 기사로 확정되지 않는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31년 9월 7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31-09-07 4면 · 기사 ID 1931090700239204010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31090700239204010&set_date=19310907&page_no=4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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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07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35년 5월 8일자 6면 — 「普校基金完納」

    영덕군 안에서 창수면만 보통학교가 완성되지 못했는데, 설립위원회의 활동으로 창수보통학교 기본금 3,700원을 한 달이 안 되어 완납했고 인가도 머지않으리라고 전한 동시대 보도. 위원 명단에 회장 이락현, 부회장 이겸호, 위원 이현설·권태호와 지면 훼손으로 판독되지 않는 두 이름이 실려 있다. 1928년 동창학교와는 별개인 창수공립보통학교 설립 과정에 이현설이 관여한 사실을 확정한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35년 5월 8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35-05-08 6면 · 기사 ID 501019350508e10633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501019350508e10633&set_date=19350508&page_no=6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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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31 · 공공DB · 후대 공식기록

    창수초등학교 공식 학교연혁 — 창수공립보통학교 설립인가와 개교

    학교가 스스로 공개한 공식 연혁. 창수공립보통학교의 설립인가를 1935년 9월 25일, 개교를 1935년 10월 8일로 적었다. 이 연혁에서 1928년 동창학교나 동창학원을 승계했다는 문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록관은 이를 근거로 동창학교와 창수공립보통학교를 별개의 학교로 취급한다.

    생산
    경상북도교육청 창수초등학교 · 연도 미상
    소장처
    창수초등학교 (경상북도교육청 학교 누리집)
    식별번호
    학교소개 · 학교연혁
    링크
    https://school.gyo6.net/changsu/hm/hist/selectHistList.do?mi=109285
    이용조건
    페이지 화면과 본문을 옮겨 싣지 않고, 연혁이 적은 날짜와 항목만 사실로 인용하고 원문 링크를 제공한다. 원문은 위 링크에서 누구나 직접 열람할 수 있다.

    공식 후대기록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 DOC-030 · 지역지 · 후대 지역기록

    『창수면지』(蒼水面誌) 제5장 교육과 종교 484쪽 — 동창학원 서술

    창수면의 교육을 정리한 장의 한 대목으로, 점두들 동창학원이 1935년에 설립되어 1938년에 폐쇄되었다고 적었다. 사건보다 70여 년 뒤에 편찬된 후대 서술이며, 동시대 신문이 전하는 1928년 개학·1930년 운영·늦어도 1931년 폐쇄와 연대가 어긋난다. 이 대목에 이현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생산
    영덕문화원 (집필 이재곤 · 기획·편집 임진동) · 2009년 5월
    소장처
    영덕문화원 ·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원문 제공)
    식별번호
    제5장 교육과 종교 · 484쪽
    링크
    https://www.nculture.org/lib/libraryDetail.do?contentId=78749
    이용조건
    본문 전재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와 전문을 옮겨 싣지 않고 서지사항, 원문 링크, 핵심 사실 요약과 최소 범위의 어구만 표시한다. 원문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공식 후대기록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 DOC-027 · 지역지 · 후대 공식기록

    『영덕군지』 제6편 제1장 교육 — 「(5) 경흥학원·명륜원·동창학원」 (영덕군청 웹 게재본)

    영덕군청이 공식 누리집에 게재한 『영덕군지』 교육 장의 한 대목. 창수면 창수리의 일명 점구(店邱) 동창학원이 1935년 마을 유지들의 협찬으로 설립되어 초대 원장 김윤덕이 취임했고 1938년 폐지되었다고 서술한다. 동시대 원문이 아니라 후대 편찬 서술이며, 『창수면지』 484쪽과 같은 연대를 적어 동시대 신문의 1928년 개학·늦어도 1931년 폐쇄와 어긋난다. 이 대목에 이현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생산
    영덕군지 편찬위원회 · 영덕군청 · 연도 미상
    소장처
    영덕군청
    식별번호
    제6편 제1장 교육 · 제1절 교육의 변천 · (5) 경흥학원·명륜원·동창학원
    링크
    https://www.yd.go.kr/?p=71901
    이용조건
    본문 전재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본문을 옮겨 싣지 않고 서지사항, 원문 링크, 핵심 사실 요약과 최소 범위의 어구만 표시한다.

    공식 후대기록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 DOC-028 · 구술 · 가족 제공자료

    유족 구술 청취 기록 (2026-08-21) — 학교 건립과 면협의원 출마

    2026년 8월 21일 유족이 전한 기억. 이현설이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창수면 협의원이 되었다고 들었다는 내용이다. 교육기관 건립 관여와 공직 진출이라는 두 사실은 동시대 신문으로 각각 확정되지만, 출마 동기라는 인과를 뒷받침하거나 반증할 직접 사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생산
    이현설 선생 후손 가족 · 2026년 8월 21일
    소장처
    이현설 기록관 (가족 보유 청취 기록)
    식별번호
    미확인 · 재확인 필요
    이용조건
    청취 원문·녹음·전달자 신원은 공개하지 않는다. 화면에는 검증 상태를 붙인 요지만 표시한다.

    가족 제공정보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조선일보 지면 이미지는 저작권과 게시허가가 확인되지 않아 공개하지 않습니다.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하며, 원 지면은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에서 누구나 직접 열람할 수 있습니다. 『창수면지』·『영덕군지』와 학교 연혁도 본문을 옮겨 싣지 않고 서지사항과 링크만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