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지 · 진행 중인 조사

사진 추적 조사

이 기록관의 여러 조사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현설 선생의 생애와 공적은 판결문을 비롯한 원자료로 이미 확정되어 있으며, 이 페이지는 그 위에 더할 사진 자료를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기록합니다.

사진 자료 조사 현황 · PER-001 · 최종 검토 2026-08-19

姓名 李鉉卨 生沒 1894.06.15 — 1952.05.24 肖像 未 發 見 代替物 使用하지 아니함
이 기록관은 가짜 초상, AI로 복원한 얼굴, 빈 액자, 실루엣을 대체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순간 기록관은 기록이기를 그만두기 때문입니다.

조사 경로 현황

판정 기준 →
사진 추적 경로별 상태
경로 상태 왜 이 경로인가 무엇에 막혀 있나
감옥 개인 수형기록 미확정
검증 중
사진과 이름이 같은 문서 위에 물리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 확인되면 A등급. 사진 부착이 필수였다는 증거가 없고, 이현설 개인철로 확정된 문서 묶음도 아직 없다.
편찬물 권두 존영부 미확정
재조사
독립운동 인물 편찬물의 권두 존영부에 사진이 실릴 수 있다. 문제의 사진은 캡션이 `李鉉禹`로 확인되어 배제되었다(DOC-022). 이번에는 `李鉉卨` 캡션이 존영부 어딘가에 실제로 있는지, 그리고 열람한 판본이 3종 중 무엇인지부터 확인한다.
1968년 포상철 개인 공적조서 미확정
검증 중
사망 16년 뒤 유족이 제출한 공적조서에 사진이 첨부되었을 가능성. 이현설 개인 공적조서의 사진 부착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1954년 무렵 인물 사진자료집 미확정
확인 전
1952년 사망 이전 촬영본이 재수록되었을 시기적 가능성이 있다. 캡션의 존재와 사진 제공자·원소장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학교·지역 단체사진 미확정
탐색 중
동창학교·창수보통학교와 지역 행사의 단체사진. 이름 명단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찾지 못했다. 명단 없는 단체사진은 D등급에 머문다.
문중·가족 소장 사진 미확정
제보 대기
문중과 마을에 남은 옛 사진이 가장 직접적인 경로일 수 있다. 소장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 제보를 기다린다.
그동안 511쪽이라 불러온 존영부 사진 배제
배제
한때 이현설의 초상으로 판단되었다. 2026-08-16 유족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지면을 직접 촬영해 캡션이 `李鉉禹`임을 육안 확인했다. 판본 차이 가설도 기각. 인쇄 면수는 별도로 재확인 필요.
1968년 유가족석 영상·사진 배제
배제
1968년 3·1절 중앙 기념식 유가족석 화면. 1952년에 사망한 본인일 수 없고, 화면 속 인물도 특정되지 않았다. 게시하지 않는다.

사진이 나타나면 무엇을 확인하는가

닮았다는 인상만으로 얼굴을 발표하지 않습니다. 후보 사진은 아래 고정 신원값과 대조합니다.

신원 대조에 사용하는 고정값
항목
성명이현설 李鉉卨
생몰1894-06-15 ~ 1952-05-24
1919년 주소경북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사건1919-03-19 창수면 만세시위
사건번호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 형제786호
확정판결1919-09-30 대구복심법원 징역 4년

그리고 사진 자체에 대해서는 앞면과 뒷면, 캡션과 필기, 촬영 시기와 장소, 원판번호, 소장 계보, 최초 식별자와 그 근거를 함께 기록합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등급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나이 차이도 고려합니다. 수형 사진이라면 약 26세, 말년 사진이라면 최대 57세입니다. 해상도·시선·조명이 다른 사진을 유사도 점수 하나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관련 자료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진뿐 아니라 족보, 편지, 장례 기록, 학교 단체사진, 마을 행사 사진 모두 단서가 됩니다. 제보만으로 인물을 확정하지 않으며, 공개 전에 반드시 제보자의 동의와 자료 검증을 거칩니다.

ucted.way@gmail.com · 제보 안내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