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결론부터
이 편찬물과 그 판본을 반복해서 뒤지는 조사를 여기서 멈춘다. 사진을 찾는 일을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책의 다음 판본을 계속 열어보는 방식으로는 더 나아갈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2026년 8월 19일, 기관 두 곳에서 회신이 왔다. 한 곳은 일본 기후대학도서관, 다른 한 곳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이다. 두 회신 모두 우리가 기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대로 적는다.
첫 번째 회신 — 기후대학도서관
제3화에서 남긴 숙제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열람한 판본이 무엇인가”였다. 그 확인을 위해 이 편찬물을 소장한 해외 기관에 조회를 넣었고, 기후대학도서관이 소장본을 직접 확인해 회신해 주었다.
소장본은 『韓國獨立史』 1967년 증보판이었다. 청구기호 221.07/Kan, 자료ID 111665388, 배가위치 図本館集密. 서지 레코드는 BA32242105이며 OPAC에서 직접 조회할 수 있다.
→ https://opac.lib.gifu-u.ac.jp/opc/recordID/catalog.bib/BA32242105
지면 구성도 알려주었다. 목차에 愛國志士個人略史와 愛國志士個人書報 五〇一 항목이 있고, 쪽수가 매겨지지 않은 인물·표제면 뒤 501쪽부터 愛國志士個人尊影이라는 제목 아래 흑백 개인초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대조 결과가 있었다. 李씨 성 초상의 캡션이 실린 522쪽 제2단부터 528쪽
제4단까지 전체를 확인했고, 대조에 사용한 표기 목록은 여섯 항목이었다. 서로 다른
자형으로는 李鉉卨, 李賢卨, 李鉉偰, 李玄卨, 李鉉雪 다섯 가지다.
일치하는 캡션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관은 해외 상호대차를 받지 않는다고 알려주면서, 같은 자료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도 있다는 것을 함께 안내해 주었다.
→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26795570
이 회신을 어디까지 읽을 것인가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이 결과는 기후대학도서관이 소장한 1967년 증보판 한 부의, 李씨 성 초상 캡션 구간에 한정된 음성 결과다. 이 편찬물의 모든 판본에 이현설의 초상이 없다는 증명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사실은 별도의 주장으로 분리해 CLM-025에 기관 확인
등급으로 기록했다. 회신 내용은 DOC-023에 요약해 두었다.
한 가지 부수적인 확인도 있었다. 1967년 증보판이라는 판본의 존재와 서지사항이 이 회신으로 독립적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2026년 8월 16일 유족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촬영한 DOC-022가 그 판본이라는 뜻은 아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열람본의 판본은 여전히 미확정이다. 두 가지를 붙여 읽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지난번에 우리가 저질렀던 종류의 잘못이다.
덧붙여 하나 더. 이 판본에서 李씨 성 초상은 522쪽부터 시작한다. 511쪽이라는 숫자와
이 판본의 배열은 서로 어긋난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말할 수 없다. 열람본의 판본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찰만 적어 둔다.
두 번째 회신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다른 경로도 함께 확인하고 있었다. 1954년 무렵 엮인 독립운동 인물 사진자료집이다. 편찬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지는 장도빈과 관련된 원자료가 남아 있다면, 사진의 원판이나 인물대장에서 실마리가 나올 수 있다고 보았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역사박물관)이 교사(校史) 자료와 기증 유물을 확인한 뒤 회신해 주었다.
| 조회 항목 | 회신 결과 |
|---|---|
| 『한국독립사와 독립운동지사들의 얼굴』 편찬 원고 | 확인되지 않음 |
| 국사원 원고·사진자료·앨범·네거티브·인물대장·교정쇄 | 확인되지 않음 |
| 이현설의 이름 또는 관련 지역으로 확인되는 이미지·기록 | 확인되지 않음 |
이 대학에는 대학과 관련된 장도빈 자료 일부가 있을 뿐이며, 개인 저술이나 개인 아카이브가 별도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다는 설명도 함께 있었다.
이것도 범위를 지켜서 읽어야 한다. 이 기관이 보유·관리하는 범위 안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딘가에 그 원고와 사진 원판이 남아 있을 가능성까지 닫히는 것은 아니다. 회신 내용은 DOC-024에 요약했다.
책 경로에서 확인된 실패를 모아 본다
지금까지 이 편찬물로 향한 길에서 확인된 것을 순서대로 적으면 이렇다.
- 국립중앙도서관 열람본 — 문제의 인물사진 아래 인쇄된 캡션은
李鉉卨이 아니라李鉉禹였다. 유족이 지면을 직접 촬영해 육안으로 판독했다. 이현설의 초상이 아니다. → CLM-015, DOC-022 - 판본 차이 가설 — 그 사진을 판본 차이로 설명해 되돌리려는 주장은 배제되었다. 캡션에 적힌 이름이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 CLM-024
- 기후대학도서관 1967년 증보판 — 李씨 성 초상 구간 전체에서 여섯 항목의 표기를 대조했고, 일치하는 캡션은 확인되지 않았다. → CLM-025
- 국사원 편찬 원자료(단국대 조회) — 편찬 원고, 사진자료, 앨범, 네거티브, 인물대장, 교정쇄 모두 그 기관 소장 범위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 DOC-024
네 개의 결과 모두 음성이다. 그러나 네 개를 더한다고 “이 책에는 없다”가 되지는 않는다. 확인한 것은 한 열람본의 한 캡션, 한 소장본의 한 구간, 한 기관의 소장 범위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이상은 적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닫고 무엇을 여는가
닫는 것은 방식이다. 같은 책의 다음 판본을 하나씩 열어보며 존영부를 훑는 조사는 여기서 멈춘다. 남은 판본의 목록조차 이 기록관은 확정하지 못했고, 확정되지 않은 목록을 따라 무한히 이어지는 조회는 조사가 아니라 관성이다.
여는 것은 다른 기록군이다.
- 감옥의 개인 수형기록
- 1968년 포상철의 개인 공적조서
- 학교·지역 단체사진과 명단
- 문중과 가족이 보관해 온 옛 사진
이 가운데 수형기록 경로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에 조회를 넣어 두었고, 아직 회신을 받지 못했다. 결과가 오기 전까지 이 경로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적지 않는다. 회신이 오면 그 내용을 그대로 자료 레코드로 등록하고, 이 연재에 이어서 쓴다.
왜 원문을 공개하지 않는가
두 건 모두 기관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답신한 메일이다. 담당자의 성명과 연락처가 들어 있어 원문, 서명, 메일 주소는 어떤 형태로도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하는 것은 기관이 확인해 준 서지사항과 조사 결과뿐이며, 그 요약은 위에 적은 것이 전부다.
확인이 필요한 분은 위에 적어 둔 OPAC 서지 레코드와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기록으로 소장 사실을 직접 조회하실 수 있다. 우리가 요약한 내용과 어긋나는 점을 발견하시면 알려 주시기 바란다.
무엇을 바꿨나
- DOC-023 기후대학도서관 회신, DOC-02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회신을 자료 레코드로 등록했다. 두 건 모두 원문 비공개이며 첨부 파일은 없다.
- CLM-025를 새로 만들어 1967년 증보판 한 부의 대조 결과를
기관 확인등급으로 기록했다. - CLM-024의 문장을 고쳤다. 배제되는 범위를 “그 사진을 판본
차이로 설명해 되돌리려는 주장” 하나로 좁혔다. 이 편찬물의 어느 판본엔가
李鉉卨캡션이 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 대상이 아니다. - DOC-017의 판본 서술을 고쳤다. 알려진 판본이 3종이라고 적었던 대목을 판본별 확인 상태 표로 바꾸고, 알려진 판본의 가짓수를 단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했다.
- 제3화의 같은 대목도 함께 정정하고, 글머리에 갱신 사실을 표시했다.
- CLM-014의 검토일을 2026년 8월 21일로 갱신하고 두 회신을 근거 자료로 연결했다.
지금 서 있는 자리
- 이현설 선생의 사진: 미발견
- 이번에 닫은 것: 같은 편찬물의 판본을 반복해 뒤지는 조사 방식, 국사원 편찬 원자료가 단국대에 남아 있으리라는 전제
- 살아 있는 조사 경로: 감옥 개인 수형기록(회신 대기), 1968년 포상철 개인 공적조서, 학교·지역 단체사진과 명단, 문중·가족 소장 사진
- 여전히 미확정: 국립중앙도서관 열람본의 판본과 인쇄 면수, 존영부 손글씨 숫자의 의미
3화를 쓰면서 우리는 잘못 얻은 얼굴 하나보다 정확한 문장 세 개가 오래 간다고 적었다. 이번 회신 두 통은 그 문장을 늘려주지 않았다. 대신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될 길을 알려주었다. 조사에서는 그것도 진전이다.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