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그럴듯한 가설
1919년에 4년형을 받은 사람이라면, 감옥에 들어갈 때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이것이 조사 초기의 가장 강한 가설이었다. 실제로 이 시기의 수형 기록 중에는 개인의 사진이 부착된 문서 양식이 있고,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처럼 사진이 중심인 자료군도 따로 있다. 스물여섯 살의 얼굴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얻는 것도 크다. 사진과 이름이 같은 문서 위에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가 A등급으로 규정한 증거의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를 닮았다는 인상이 아니라, 문서가 스스로 신원을 보증하는 형태.
그런데 두 번 멈췄다
첫째, 사진 부착이 필수였다는 증거가 없다. 해당 시기 수형 관련 문서 양식에서 사진란이 반드시 채워졌다고 단정할 근거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양식에 칸이 있다는 것과 그 칸이 언제나 채워졌다는 것은 다르다.
둘째, 개인철이 특정되지 않았다. 조사 과정에서 관련 가능성이 있는 문서 묶음을 몇 건 확인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이현설 개인의 기록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번호가 가깝다는 것, 시기와 관할이 맞는다는 것은 후보의 조건일 뿐 확정의 근거가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다. 시기가 맞고 관할이 맞고 형기가 맞으니 이것이 그 사람의 기록일 것이라고. 그러나 제1화에서 번호로 사람을 특정하기로 한 원칙을 여기서 스스로 깨면, 이 조사 전체가 무너진다.
출옥일을 모른다는 사실
이 가설을 좇는 과정에서 오히려 분명해진 것은, 우리가 출옥일조차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1919년 9월에 4년이 확정되었으니 1923년 무렵 나왔을 것이라는 계산은 감형 가능성 때문에 그대로 쓸 수 없다. 감형이 적용되었다면 시점이 앞당겨진다. 적용되지 않았다면 그대로다. 개인 장부를 보기 전까지 이 사이트는 어느 쪽도 쓰지 않는다.
감형과 석방을 기록하는 감옥의 개인 장부는 공개색인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개된 검색 도구로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사이트가 두 표현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이 가설은 살아 있다
배제된 것이 아니다. 검증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 이 경로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개인 명적표의 앞면과 뒷면, 성명과 생년, 본적, 입감 번호, 촬영처, 사진 원판번호, 그리고 판결·출옥과의 연결.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진이 나와도 A등급이 되지 않는다.
수인복을 입은 스물여섯 살의 사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 그 사진 옆에 이름과 번호가 함께 있어야 한다.
다음 화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우리가 한 번 사진을 찾았다고 믿었다가, 그 판단을 철회한 과정에 대해 쓴다.